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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멀티버스를 소재로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MCU가 그렇다. 마블은 자신들의 세계관 전반에 멀티버스를 깔아놓았다.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해 관객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대체로 나는 멀티버스 소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추억의 스파이더맨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은 내게도 큰 즐거움이었다.
이야기 속의 멀티버스
멀티버스는 우리말로 다중우주에 해당하는 말로, 우리가 사는 우주 말고도 무수히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단순히 가설일 뿐,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SF장르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데에는 훌륭한 소재임에는 틀림 없다. 개인적으로는 멀티버스를 소재로한 시리즈로 애플tv에서 스트리밍한 <30일의 밤, 원제: Dark Matter>을 상당히 재미있게 시청했다.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다른 미지의 우주로 떨어지게 된 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원래의 우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우주의 모습을 엿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러 작품들 속에서 멀티버스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며 영희와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우주에서 철수는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으며 아내는 영희가 아니라 태희다. 그리고 그 둘은 당연히 다른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으며, 영희는 다른 남자와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첫 번째 철수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달이 하나이지만 두 번째 철수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달이 두 개일 수도 있다. 물론 철수가 없는 우주도 있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인류도 존재하지 않는 암흑뿐인 우주도 존재할 것이다. 이런 무한한 가정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멀티버스의 세계관이다. 아무튼 주인공의 관점에서 다른 우주를 볼 수 있다면 다른 우주 속에서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도 다르고, 정치 체계도 다르며, 우주의 천체 체계도 다를 것이다. 그것이 관객의 입장에서 멀티버스 세계를 바라보는 즐거움일 것이다.
해외여행에서 경험하는 이질감
그런데 이걸 현실에서도 느끼게 되는 때가 바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내 이름과 얼굴을 가진 인물이 해외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도플갱어라도 이름은 다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몇십 년을 살다 보면 익숙해진 삶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쌓이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생긴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는 지하철 어느 노선으로 갈아타더라도 환승이 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심지어 버스까지 환승이 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에 가면 그렇지 않다. 지하철 환승이 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일본에 갔다간 당황스러울 것이다. (일본에는 수많은 민영 철도 회사들이 있어서 다른 회사의 노선끼리는 환승이 불가하다.) 반말 사용법도 그렇다. 한국에서 반말은 동등한 관계, 혹은 아랫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처음 만난 사이나 윗 사람에게 반말을 사용하는건 대체로 무례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꼭 그렇진 않다. 일본 사람들은 직장 상사라하더라도 회식 자리에서는 반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반말 사용법은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걸 모르고 일본에 여행갔다가 자신에게 반말하는 일본 사람들을 만나곤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부모에게 존대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에서 부모에게 존대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부모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예절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일본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지리적으로 더 먼나라 혹은 우리와 정치체계나 경제구조가 다른 나라는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한국의 교통 문화는 점점 안전해지고 있다. 법적인 규제도 한 몫 한다. 최근 교통법 개정으로 횡단보도에 사람이 건너고 있으면 차들은 보행자가 모두 건널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직은 이걸 거추장 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지만, 이것도 몇 년 뒤엔 당연한 인식으로 자리잡힐 것이다. 교통 문화의 상향평준화라고 할까, 이건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흐름인 듯 하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는 대체로 횡단보도 위에서 보행자의 안전이 꽤나 보장되는 편이다. 그런데 많은 개발도상국들는 어떨까. 혼돈과 공포 그 자체다. 보행자들을 기다려주는 차가 있을리 없다. 찻길을 건널 때면 극도로 긴장하게 된다. 차들이 멈추지 않고 달려오기 때문에 오는 차들을 잘 보면서 피해가야 한다. 십수년 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정말 놀랐고 무서웠고 신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것에서 오는 놀라움,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정말 다른 나라에 왔다는 신남이었다. 지체없이 달려오는 차들을 보며 경쾌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현실의 멀티버스?
해외 여행을 해보면 도로 상황이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여러가지가 다른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해보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는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하고, 노력한 일의 보상을 받으면 보람을 느끼고,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슬퍼한다. 즉 미국에 사는 피터나, 일본에 사는 나카무라나, 한국에 사는 철수나 모두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문화와 세계관 속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해외여행을 했을 때 경험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 바로 이것이다. 해외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이게 마치 멀티버스의 현실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당연해진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더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익숙한 동네도 없다.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이다. 멀티버스 세계관의 영화 속에서 다른 우주에 가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겪는 이질감이나 우리가 다른 어떤 나라에 발을 처음 디뎠을 때의 그것이 동일한게 아닐까 싶다.
2년 전 3월,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으로 베트남 나트랑이라는 곳에 다녀왔다. 아이에게도 첫 해외 여행이었다. 나는 베트남 자체가 처음이었다.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창밖으로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에서 베트남의 활력을 느꼈다. 아침 9시, 서울이었다면 출근으로 바빠 걸어다니는 사람들밖에 안보였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왠지 모를 낭만을 느꼈다. 오랜만의 느껴보는 동남아 기후도 기분이 좋았다. 5일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 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자 당시 느꼈던 이질감과 즐거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었던 베트남 사람들도 떠올랐다. 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리다 만난 프리랜서 일을 하는 아기 아빠. 우리를 가이드 해준 예비 아빠와 딸아이의 엄마. 그리고 리조트에서 만난 개발자 친구들. 나는 왜 한국에서 태어난 걸까? 베트남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일본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 문화에 익숙해진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겐 내가 사는 이 나라의 문화도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겐 멀티버스 속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멀티버스 속 여러 우주에 흩어져 각자의 우주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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