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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가 되고 일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직업을 바꿨고 공부하는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만족하고 있고, 그 때 고민하고 용기를 낸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말에 다니던 무역회사를 퇴사했다. 3년 전인데 벌써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그 때의 결심과 행동이 내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다. 그래서 그 때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 글 목록

-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1 (회사 퇴사 이야기)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2 (학원 등록)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3 (구직 1)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4 (구직 2)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5 (마지막)

 

내가 문과생이 된 이유와 회사 생활

나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외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전공이었다. 졸업 후에는 뭔가 국제적인 일이나 혹은 해외 선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즉 외국에서 일하거나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는 미래를 꿈꿨다.

 

졸업 후 관심이 많았던 비영리 단체에서 1년을 일하고 그 다음에는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외국어를 많이 사용할 수 있었고 특히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비지니스에 대한 시각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힘든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란 고객이나 외국회사 파트너를 만나서 응대하고 고객사로 이동하고 교류하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블특정 다수의 고객들이 찾아오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나중에 퇴사 후 한참 지나서 왜 그랬을까 곰곰히 돌이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당시에 나는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많이 안만나도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향적인 성격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나는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 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한 두 명의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은 좋지만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많아지면 에너지 소모가 커지고 피로도가 급격히 쌓인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 혹은 집에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은 내가 대학에서 미래의 직업을 상상할 때는 이런 내 성격을 많이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외국어를 좋아하고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으니 막연하게 외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 짧은 생각이었다. 미련하리 만큼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았다.

 

회사에 손님이 많이 찾아오고, 때로는 내가 손님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스킬도 생기고 어느 정도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점점 더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만나는 상대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할 것 없이 똑같았다. 점점 이 일을 평생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향성과 관련된 글과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된 사실은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받아들이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나면 극도의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

반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항상 즐거웠다. 컴퓨터로 뭔가 자료를 정리하고 만드는 것도 좋았다. 엑셀도 꽤 잘 다루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문서를 깔끔하고 보기 좋게 만들었다. 집에서도 컴퓨터로 노는 시간이 많았고 컴퓨터만 있으면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다니던 무역회사는 산업용 장비를 다루는 회사였기 때문에 크고 작은 기계들을 볼 일이 많았다. 특히 현장에서 여러 기계들이 움직이고 제품을 생산해내는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온 유럽 엔지니어들을 만나는 일도 많았는데 기계와 저렇게 친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도데체 이런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떻게 이런 것들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가 만든 제품을 파는 일보다 내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 엔지니어가 고객사에 제품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

그리고 당시에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공한 에어비앤비, 페이스북과 같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유니콘기업이 되었는가와 같은 글들이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일부 소수의 회사들은 이미 상당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카카오가 그랬고, 당시에만 해도 배민의 우아한형제들은 아직 직원이 몇십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이지만 그들의 문화와 업무 환경이 주목을 받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 스타트업의 업무환경을 소개하는 글들이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수평적인 업무환경, 멋진 사무실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만 있으면 제품을 만들 수 있다니. 그런 일을 하고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꿈만 같았다. 왜 나는 그토록 컴퓨터를 좋아했으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워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퇴사

나는 뭔가 만드는걸 좋아했고, 컴퓨터가 좋았고,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데에도 밝았다. 그런 면에서 다니던 무역회사에서 다루는 장비가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친했던 기술부 차장님이 내 제안으로 제품 고장의 원인을 찾았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차장님과 나중에는 많이 친해져서 제품을 고치는 모습을 많이 구경했다.

 

그래서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또한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더 늦기전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개발자가 내 천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퇴사를 결심했다. 실제 퇴사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한 나를 좋게 봐주셨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나를 많이 격려해주셨고 혹시 어려워지면 돌아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퇴사 후 한 달 정도는 백수의 삶을 즐겼다. 엄마, 동생과 함께 대만 여행을 다녀오고, 잠도 실컸 자고, 한 낮에 카페에 가서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그 때 느낀 놀라운 사실은 퇴사의 기쁨은 겨우 2주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개발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문과생인 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2에서 계속)

 

무역회사의 내 자리에서 바라본 창문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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