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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첫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의 이유는 입사를 결정한 이유의 반대였다. 면접관이었던 이사님때문에 입사를 결정했었다. 손코딩 후 나눈 대화 내내 개발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개발 경력도 탄탄한 사람이었다. 50에 가까운 중년의 나이였지만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함께 일하게 된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개발자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회사는 나중에 합류한 분까지 다섯 명의 이사님들이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나를 채용한 기술이사님은 몇 달이 지나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처음에는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했으나 결국 그는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퇴사 전까지 회사에서 유일한 개발자였다.
내 입사 후에 들어온 다른 두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남게 되었지만 이사님들을 제외하고 직원은 나 뿐이었다.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늘 생존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떻게든 나도 최선을 다해 회사가 잘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했다. 그보다 내가 겪고 있던 문제는 쓸쓸함과 배움에 대한 좌절이었다. 둘 다 견딜만 했지만 종종 마음 깊숙히 후벼팔 때가 있었다.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발자들과 같이 그럴 때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감사하게도 대표님과 이사님들이 나를 잘 대해주셨고 많이 배려해주셨다. 사업에는 늘 어려움이 많았어도 비교적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네이티브 앱 대신 웹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웹으로 베타 서비스를 오픈했다. 앱을 출시하려던 계획은 멀어졌고, 프로그래밍 보다는 시스템 운영과 외주 업체와 소통하는 일이 많아졌다. 고민도 많아졌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여기에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나에 대한 걱정과 배려가 담긴 말들을 해주셨다. 내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다. 감사했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회사일이 점점 여유가 많아지면서였다. 그동안은 계속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고민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웹서비스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시간이 많아졌고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혼자 일하면서도 당연히 성장하고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을 헤매게 될 것이 뻔했다. 경험 많은 누군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빨리 배우려면 좋은 개발자들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결국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1년이 채 못되어 다시 회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회사에는 어떻게 의사를 전달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떠나면 다른 개발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 미안한 마음도 많았다. 내가 무책임하거나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민 끝에 말씀드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상황에 대한 설명과 다음의 조건을 근거로 말씀을 드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재택근무 (현재 일이 많지 않음을 설명)
- 재택근무와 동시에 구직을 진행
- 작업을 대신할 개발자를 구하기 전까지 발생하는 이슈 대응
- 4월 급여는 50%
- 그리고 죄송한 마음
할 일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구직을 진행해야 최대한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도 미리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 내내 재택근무를 하는데다가 일도 별로 없는 상황이라면 급여를 100% 받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급여가 줄더라도 구직에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대표님이 이해해주시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픈한 웹서비스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미 사용자도 조금 유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금요일에 우선 웹사이트를 닫고 회사에서는 이용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주말 내내 문제를 찾았다. 총 세 가지의 문제를 찾았고 내가 해결이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눠서 해결방안에 대한 대응책을 세웠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해서 회의를 요청하고 회사 분들에게 상황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충분히 테스트하면 수요일에는 다시 오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금요일에 재오픈하자고 하셨다. 주말동안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내가 미리 인지를 했더라면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대표님과 이사님은 일차적 원인은 외주업체에 있다며 오히려 내가 고생한 덕분에 문제를 빨리 찾을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했다.
그 날 오후 늦게 조심스럽게 이직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위의 생각도 함께 말씀드렸다. 조금 전 회의때만 해도 일을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했었는데, 퇴사 이야기를 하려니 죄송하고 민망했다. 대표님과 이사님은 묵묵히 들으시더니 알겠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급여는 모두 지급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히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미안하다고 하셨다. 퇴근 전까지 대표님, 이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 5일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구직을 하지는 않았다. 우선 전략이 필요했고, 하고 싶은 공부도 있었다. 약 2주간 공부를 하고 대표님의 요청으로 4월 마지막 날에 사무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맥북도 반납하고 남은 짐도 정리해야 했다. 회의실에서 대표님과 이사님,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표님이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같이 일하고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고 힘이 많이 되었다고 하셨다. 깊이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떠나는 것이 회사에 어려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많이 죄송했다. 그리고 이어서 퇴직금을 조금 챙겨주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작년 5월말에 입사를 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데 대표님이 일부러 마음을 써주신 것이다. 나지막히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외에는 딱히 뭐라 해야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나간 날들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짧게 나눈 대화였지만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곳에 적을 수는 없지만 잊을 수 없는 말들을 해주셨다. 내가 참 큰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5월 11일부터 여러 회사 채용공고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첫 날 40개 정도의 회사들을 지원했는데 다음날부터 많은 회사들이 응답을 해줬다. 코딩테스트와 면접일정이 많이 잡혀서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았다. 2주 후 그 중 한 회사에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첫 이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한 달을 쉬면서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유부남으로서 부담이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구직기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새로운 근무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다시 적응을 해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성장하고, 기여하고,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기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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