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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첫 회사를 떠나온지 세 달이 되어간다. 11개월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구직 당시 30대에 비전공자였던 나는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았다. 지원한 회사들 중 연락이 오는 곳은 대부분 스타트업이었다. 그 중 한 회사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고 나도 그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설립된지 1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이라 안정적인 회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회사는 작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해야하는 곳이었지만 CTO와 같이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처음에 상상했던 개발자의 삶이 비로소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스타트업의 첫 직원으로 내가 입사했다. CTO를 포함해 네 명의 이사님들이 창업멤버로 계셨다.

 

이사님이 그동안 작성한 코드를 처음 보고 놀랐다. 코드의 양이 정말 방대하게 느껴졌다. 공부하면서 내가 작성한 코드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처음 접한 코드의 양은 내 코드의 족히 100배는 돼 보였다. 실무에서 작성하는 코드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배웠으면서도 쓸 생각은 못했던 여러 클래스와 상속관계,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보기만 했던 커스텀뷰, 디자인패턴, 의존성주입 등을 그 때 처음 코드로 경험했다. 코드 리뷰라는 것도 하고 잘 이해가 안되면 물어보면서 일을 했다. 

 

사무실이 잠실 근처에 있을 때 사용하던 내 자리, 2월에 선릉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다.

꿈만 같았다. 개발자가 되었다는 것이. 내가 코딩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새 맥북을 처음 받았을 때의 설렘도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개발자가 되었구나 느꼈다. 맥북을 항상 가지고 다녔고 집에서도 코딩을 했다. 재택근무도 처음 경험했다. 출근을 안하는 날에는 아내가 많이 부러워했다. 

 

그러나 좋은 시간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회사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려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입사 뒤에 들어온 두 명의 여직원들이 나가게 되었을 때 그다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쓸쓸하기는 했다). 그러나 많이 낙심이 되었던 건 돌아오기로 했던 CTO가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였다. 내가 5월 말에 입사했고 9월 말 쯤부터 그 분이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대표님을 통해 그 분이 대기업 외주 프로젝트에 들어가서 내년 3월 정도에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돌아온다 했으니 혼자 일하면서 그분이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제3자로 부터 듣게 되었다. 대표님도 그때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 분이 아무 설명도 없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알 수 없다. 창업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항상 생각했지만, 그 때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회사를 세웠어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제품 출시가 더욱 불투명해졌고 계획 변경이 불가피했다. 서버개발자 없이 그 오랜 시간을 더미 데이터만 가지고 개발 중이던 앱의 출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시간과 자금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이사님들이 판단한 플랜B는 워드프레스였다. 워드프레스를 외주에 맡기고 나는 AWS 운영과 서버관리를 담당했다.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우리가 요구한 스펙이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외주업체는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모두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럴까 의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납기가 계속 지연되고 웹사이트에서는 에러가 끊임없이 터졌다. 그리고 급기야 페이지의 로딩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업체를 바꾸기도 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기능들을 대폭 축소하고 필수라고 생각하는 요소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베타 서비스를 오픈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첫 회사에서 1년을 채우지 못했다. 11개월을 근무했다.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개발자로서의 성장이 내게 절실했다. 그래서 이직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여러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참 감사했던 시간이다. 어찌됐던 간에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기대했던 것처럼 이사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술을 전수받거나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남기고 간 코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어려움과 현실을 배웠다. 

 

첫 회사를 떠날 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잘되기를 바라셨던 대표님과 이사님들에게도 참 감사하다. 회사 운영을 하느라 정신없고 바빴을텐데 마음을 많이 써주셨다. 좋은 분들과 같이 일하며 성장할 수 있었음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가지 반성할 점이 있다. 취직을 했다는 일종의 안도감에 안주한 나머지 오래동안 공부를 게을리 했었다. 이직을 결심하고 다시 구직을 하면서 아차 싶었다. '내가 지난 1년간 충분히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스스로는 성실하게 일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타인에게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가 자문해보니 부끄러웠다. 이직을 하면 다시는 이런 나태함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텅텅 비어있는 깃허브의 커밋로그가 지난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깃허브를 다시 정돈하고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와 깃허브에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구직을 시작한 5월 이전의 커밋로그가 텅텅 비어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예 글을 못올리기 전에 생각난 것을 적어보았다. 개발자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 때의 설렘과 기쁨을 떠올리니 나름 많이 성장한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고 그 시간들을 감사함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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