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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보면 이전에 읽은 책을 마주칠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경우 '읽은 책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이 무슨 내용이었더라?' 하고 생각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혹은 '재미있게 읽었었는데'라는 정도의 기억은 나지만 상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용이 기억도 안나고 재미있었던 기억도 없는 책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다시 읽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던 기억은 확실히 나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난다면,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본가의 집 책꽂이에서 코맥 메카시의 소설 <더 로드>를 발견한 경우는 후자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는 나는 이 소설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핵전쟁으로 추정되는 전지구적 재난 이후 지옥 처럼 변해버린 세상을 아버지와 아이가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다. 뚜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던 부자가 어느날 우연히 어떤 집 앞마당 지하에 만들어놓은 대피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찾은 통조림을 마음껏 먹고 쉬었던 장면이다. 오랜 이동과 굶주림에 지쳤던 인물들의 안도와 행복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제외하고는 다른 상세한 내용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게 대략 10년 전쯤이었고, 지금의 나는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었으니 나를 둘러싼 상황이 10년 전과 비교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잿더미로 변한 세상을 아들과 단둘이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게다가 내 아이도 아들이니 몰입 조건이 극대화된 것이다.
다시 읽으려고 집으로 가져와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얼마후 다시 꺼내들었다. 하루인가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애초에 두껍지 않고 소설이기에 가능했다. 10년 전에 읽었을 때 만큼의 재미를 다시 느낄 수는 없었지만, 주인공의 아이를 향한 감정에는 확실히 더 깊이 공감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재미로만 읽었고, 이번에는 좀 더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어서 그런지 괴로운 부분도 있었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세상을 어린 아들과 살아남으려는 아빠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몰입하며 읽었던 부분이 있다. 남자가 난파된 배에 쓸만한 물건을 찾으러 간 사이, 해변에서 자신의 아빠가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기다리던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아이가 나를 의지하고 의존하는 그 모습과 책 속의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이다. 아빠 밖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는 험한 세상 속에서 아빠를 잃는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는 슬픈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특정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려던 것은 아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것을 적고 싶었다. 10년 전, 지금과 비교해 내 사고와 생각의 깊이가 지금만큼 여물기 전에는 책을 읽어도 더 깊은 차원의 것을 느끼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읽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책일수록 예전에 읽은 책을 마주치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는 집중해서 더 많은 것을 흡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다시 읽을 책은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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