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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사랑, 나라사랑
나는 왠만한 물건을 살 때 중고를 먼저 알아보는 편이다. 물건의 상태만 괜찮다면 돈을 아낄 수 있는데 굳이 새 제품을 사야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대로 나열해보자면 나는 지금 사용중인 핸드폰, 키보드, 카메라를 모두 중고로 구매했다. 최근에는 중고 자동차도 샀다. 차의 경우 거의 신차와 다름없는 상태의 중고차를 신차대비 600만원 가량 저렴하게 구입했다. 다만 중고 제품을 잘 사려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기 위해서는 새 제품을 살 때 보다 조금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1년 전 아이패드 프로 4세대 11인치 모델을 중고로 샀다. 원래 목적은 취미인 그림 그리기를 아이패드를 통해서 좀 발전시켜 보는 것이었다. 거기에 매직키보드, 애플펜슬 2세대를 모두 중고 혹은 미개봉 제품으로 샀다. 다합쳐서 122만원 정도를 지출했다. 새걸 산거에 비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아꼈던 것 같다. 싸게 사서 좋았고, 새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아이패드를 볼 때마다 흐뭇했다. 하지만 매직키보드는 사용 빈도가 적어 얼마 후 30만원에 중고로 되팔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가만보니 아이패드가 노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생각할 수록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놀리려고 1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쓴게 아닌데 말이다.
따져보니 원래 목적이었던 그림을 그리는 용도는 전체 사용량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아이패드를 켜는 횟수 자체도 몇 번 되지 않았다. 대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필기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했고, 나머지는 유튜브나 영화를 보는데 사용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일까?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고민을 해보았다. 아이패드 프로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가, 내 수준에 맞는 장비인가 말이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과 필기의 편리함을 경험한 지금에 와서 처분을 하는 것은 싫었고, 나에게 맞는 장비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 매니아인 나는 자연스럽게 사양이 낮은 모델로 변경했을 때 얼마의 현금이 나에게 돌아올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우선 내게 아이패드 사용의 주 목적은 앞서 밝힌 것 처럼 노트필기와 그림 그리기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제 영화를 볼 시간은 없다. 그림도 그렇게 자주 그리지는 않는다. 많이 그려봐야 일주일에 두 세 시간 될까말까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나에게 아이패드 프로는 과하다. (유식한 말로 오버스펙이다.) 그렇다면 내 수준에 맞는 모델은 뭘까.
프로 보다 사양이 낮은 모델을 찾다보니 아이패드 7세대가 눈에 들어왔다. 최신 모델은 8세대이지만 가격이 10만원 이상 비쌌다. 성능과 필기감 면에서는 프로보다 확실히 떨어지지만 내 수준에는 맞을 것 같았다. 스크린 크기도 지금 사용중인 프로와 비슷했다. 당근마켓에서 7세대 128gb 모델을 37만원에 파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상 상태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직거래로 구매했다. 거기에 애플펜슬 1세대 단순 개봉 제품을 또 다른 사람에게 9만원 주고 샀고, 케이스는 새걸로 1만 5천원에 추가 구매했다. 총합 475,000원. (그런데 지금 보니 성능이 조금 더 좋은 아이패드 에어 3세대를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따흑)
기존의 프로는 마침 프로 2세대를 사용하다가 기기 변경이 필요했던 내 동생에게 애플펜슬 포함 80만원에 팔았다. (동생은 직업상 아이패드로 정말 프로다운 작업을 한다.) 그렇게 아이패드를 변경하면서 차액이 대략 32만원이 생겼다. 이 돈은 고스란히 내 비상금 통장으로 갔다.
나한테 맞는 물건 고르기
2주 정도 사용해 본 결과는 大만족이다. 화면의 주사율이 120Hz에서 60Hz로 바뀌니 처음에는 이질감이 있었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프로에 비해 스피커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프로세서의 사양이 낮아졌지만 내가 사용하는 작업의 범위 안에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나에게 딱 맞는 제품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충전 케이블이 C타입에서 라이트닝으로 바뀐 것도 조금 아쉽다. 그걸로 내 갤럭시 노트를 고속충전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 경험으로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히 알면 조금 더 똑똑하게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1년 전 돈이 있다고 무턱대고 최고사양의 프로를 샀지만, 훨씬 저렴한 7세대야말로 나에게 충분한 스펙이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나중에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조금 더 높은 사양의 아이패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 때 기기를 바꾸면 될 일이다.
그리고 절약의 즐거움
나는 이런식으로 돈을 아낄 때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돈을 아껴서 모으고, 모은 돈으로 주식을 사거나 나중에 정말 필요한 물건을 일시불로 구매한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나는 어떤 물건도 할부로 구매해본 적이 었다. 그런 면에서 약간의 자부심도 생긴다.
요즘엔 더욱 알뜰한 소비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경험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다음에는 개인용 맥북프로를 구매할 예정이다. 회사에서 지급받은 맥북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개인용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를 고민 중이다. 회사에서 받은 맥북이 이미 고급 사양이기 때문에 개인용까지 최고급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적당한 사양의 중고 제품을 적절한 가격으로 사려고 한다. 나의 중고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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