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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집 이사를 했다.
결혼 후 첫 이사이기도 했고 사실상 내가 직접 주도해서 해 본 인생 첫 이사였다.

결혼 전에도 부모님과 살면서 이사를 몇 번 해보았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잘 몰랐고 그땐 오로지 내 방 물건에만 신경썼다. 새삼 부모님이 그동안 수고해준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할 수 없는 세탁실 구조

 

열 군데도 넘는 집을 보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계약을 했으나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세탁실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곳이 세탁실이었는데, 이유는 아래 사진과 같다.

전에 살던 곳의 세탁실.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올려놓았다.

세탁실이 부엌 안쪽에 위치해 있는 구조인데,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서 매우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저 공간 안에서 세탁과 건조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보니 이 패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구조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사할 집을 찾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구조로 공사가 된 집은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사날짜가 맞지 않았다. 결국 이사하게 될 곳의 집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구조였고, 심지어는 공간이 더 좁았다. 

이사온 곳의 세탁실. 이사 전 집을 보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문제1: 바닥의 단차

 

이사 하루 전날 알게 된 사실은 꽤나 충격이었다. 바닥에 단차가 있어서 건조기를 세탁기 위에 올리기는 커녕 세탁기조차 올리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이 집의 세탁실 바닥. 약 10cm 정도의 단차가 있다.

단차를 맞추기 위해 밑에 바닥에 위와 같이 나무 발판과 벽돌을 부착시켜 놓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벽쪽 바닥과 2~3cm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이 상태로는 건조기 선반을 올릴 수 없었다. 수평도 안맞지만 저 벽돌의 위치도 선반의 다리와 맞지 않았다. 

 

디버깅1: 주인 아저씨와 이삿짐 센터 직원 아저씨의 도움

 

주인분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드렸다. 이곳에 산적은 없다보니 자세한 상황은 모르셨지만 감사하게도 잘 이해해주셨고 어떻게든 다음날 아침까지 단차를 맞출 나무판을 구해서 가져오겠다고 하신다. 이삿날 약속 시간에 잔금을 치르고 주인분은 약속하신 나무 발판을 내게 건내주셨다. 나는 나무판을 들고 얼른 집으로 가서 바닥에 올려보았다. 워낙 바닥자체가 수평이 아니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탁실을 맡으신 이사짐센터 직원분은 과묵하셨지만 내 요청을 어떻게든 들어주시려고 많이 고민하셨다. 

 

세탁실 안에서 투닥투닥 작업을 하시더니 선반은 어떻게 설치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분과 함께 작은 창문으로 건조기를 넣어 선반위로 올려 주셨다. 올릴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는데 건조기가 올려진 모습을 보니 기쁘고 감사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드렸다. 

 

세탁실 안을 밖에서 본 모습

문제2: 흔들거리는 선반

 

이삿짐 센터에서는 생각보다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가셨다. 세탁실 안에 들어가서 구조를 자세히 살펴봤다. 최선을 다해서 설치를 해주셨지만 선반이 조금씩 움직였다. 건조기는 세탁기에 비해 진동이 훨씬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험했다. 아무래도 선반의 오른쪽 발 지지대가 문제인 듯 했다.

세탁기 발을 지지하고 있는 벽돌. 내가 밖에서 주워왔다.

저 벽돌들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씩 움직이는 듯했다. 저렇게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것 말고는 지금 다른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다. 수평이 맞지 않는 부분은 최대한 나무조각을 잘라 넣어 맞췄으나 선반이 앞뒤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물건이 생각이 났다.

 

'철봉, 철봉을 사용해보자'

 

디버깅2: 철봉의 재발견

 

가정용 철봉은 보통 문 사이에 고정시켜서 사용한다. 이 물건은 본래 운동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집에서 철봉의 주목적은 운동이 아니다. 수건을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중이다. 그런데 마침 이사를 와서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안방 문틀에 설치해주시려는걸 내가 세입자된 입장에서 함부로 구멍 뚫는 것이 부담스러워 설치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 철봉이 생각났다. 철봉으로 고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쓰던 철봉으로 선반을 밀어 벽과 밀착시켰다.

철봉이 미는 힘때문에 선반 프레임이 살짝 휘기는 했지만 더이상 선반이 흔들리지 않았다. 꽤나 단단하게 고정이 되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저녁에 대충 짐정리를 하고 쌓인 빨래 한 바구니를 세탁기에 넣었다. 오.. 잘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잠시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탈탈탈..타랕ㄹㄹ!!'

 

문제3: 탈수의 거센 진동

 

탈수가 시작이 된 것 같았다. 놀란 마음에 냉큼 달려가 보았더니 세탁기가 힘겹게 세탁물의 물기를 짜내고 있다. 처음 느낀 사실이지만 세탁기 탈수의 힘은 가히 엄청나다. 처음에는 천천히 돌지만 점점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세탁기의 진동은 더욱 거세졌다. 세탁기 위에 내 두 손을 올려보니 내 온 몸으로 그 진동의 세기가 전해졌다. 위험을 직감했다. 

 

'이대로 사용하면 안된다. 이대로 사용하다간 세탁기가 고장이 나든지 선반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이미 시작한 빨래는 멈출 수 없으니 그대로 놔두었다. 급우울해졌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이대로 사용하다가 진동으로 인해 세탁기 부품이 마모되어 수리비 폭탄이 발생한다.
  • 진동때문에 조금씩 선반의 위치가 움직여 어느날 갑자기 위에 있던 건조기가 아래로 떨어진다.
  • 빨래를 넣던 아내가 추락한 건조기에 크게 다친다.
  • 위와 같은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건조기를 밖으로 꺼낸다.
  • 그러려면 최소 남자 두 명이 와야하는데 인건비가 장난아닐 것이다. 그리고 건조기 때문에 집은 더 좁아진다.

이대로면 돈이 깨지거나 머리가 깨지거나 집이 좁아져야하는 상황이 모두 싫었다. 급기야 이 집으로 이사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싶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곧 마음을 바꿨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음날 강남 미팅을 갔다가 오는 길에 공구상가를 들르기로 했다. 

 

이어서 개발자가 이사하면서 생긴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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