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5살난 아들이 요즘 자주 묻는 질문이다. 아이에게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죽는게 뭔지 모르는 아이가 죽음이 뭔지 물어보는건 당연했다. 살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의외로 많이 사용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누가 죽었대' 라던가, '너 죽을래?'라며 장난을 친다던가, 어떤 물건이 수명을 다해도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아이도 어디선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고와서 내게 물었다. "아빠, 죽는게 뭐야?" 천진한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의 정의를 말해주는건 꽤나 어렵다. 죽는게 뭘까?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거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어". 그 말에 아이가 또 물었다. "우린 언제 죽어?" 그건 알 수 없다고 답하자 다시 물었다. 

"우린 왜 죽어?"

아직 어린 아이지만, 더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것, 헤어진다는 것이 뭔가 슬펐나보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죽는게 슬퍼?" 아이는 그렇다고 한다. 왜 슬프냐고 물어보니,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없어서 슬프다고 한다. 그 말에 웃음이 났지만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아빠랑 헤어지는건 안 슬퍼?"라고 물으니, 그것도 슬프다고 한다. 비슷한 질문을 계속 하던 어느날, 잠자리에서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사람은 왜 죽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우리가 몸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몸을 가진 생명체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된다고. 왜 몸을 가졌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몸이 있어서 죽는다는 말을 듣고, 아이가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몸을 주셨냐고 물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느날 또 같은 질문을 받은 순간 마음에 갑자기 대답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가족으로 만나게 하시려고 몸을 주신거야."  몸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가족으로 만날 수 있다는 축복도 존재한다. 우리는 몸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 몸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영혼은 천국에 가게 될거라고도 말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하고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만날거라고 말해주었다. 

 

천국에 가면 뭐라고 말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샘율아 어서와, 보고싶었어."라고 말해줄거라고 했다. 나와 아내가 먼저 천국에 가있고, 나중에 온 아이를 다시 만나 반가워하며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상상을 했다. 보고 싶었다니. 그 상상을 하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지금은 매일 만나고 있는 아이를, 언젠가 만날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라니. 그리고 다시 만날 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어진 하루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감각이 살아났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언제 죽는지 알 수 없을 뿐, 우리는 모두 분명히 죽는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도 죽는다. 누가 먼저 죽든간에 죽음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은 평생을 아파해야 한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죽음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우리에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있다. 

 

아이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 죽는거 싫어."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도 싫어. 그러니까 우리 행복하게 오래 같이 살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