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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다가 혹은 어떤 작품을 보다가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처음 듣는 음악인데, 처음 보는 작품인데 어딘지 모르게 다른 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혹시 같은 작곡가의 음악인가 해서 찾아보면 정말 그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엔 이미 원작자가 누구인지 알고 보긴 하기 때문에 느낌은 좀 다르지만 이야기의 흐름 상 특정 설정이 비슷하거나 유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번 이런 기시감을 느끼고 나서 드는 생각은, 창작자들이 여러번에 걸쳐 사용하게 되는 어떤 소재랄까,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래 나열한 창작자들은 여러 많은 좋은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비슷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일부 창작물들에서 어떤 유사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래는 그동안 내가 찾은 사례들이다.
1. 존 윌리암스 (John Williams), 작곡가
- Across the Stars (Love Theme from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 Hedwig's Theme (from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존 윌리암스는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해리포터> 시리즈의 음악들을 작곡한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위의 두 곡의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잘은 모르지만 현악기의 분위기가 특히 그런 것 같다.
2. 앨런 실베스트리(Alan Silvestri), 작곡가
- Back To The Future (from 백 투 더 퓨처)
- Real World Consequences (from 레디 플레이어 원)
앨런 실베스트리는 <백 투 더 퓨처>의 음악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그 뒤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처럼 웅장한 분위기의 블록버스터 영화 음악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재미있게 봤다. 개연성 측면에서 좀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주인공이 제임스 핼러데이가 유언으로 남긴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한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OST 앨범 전체를 듣게 되었다. 앨런 실베스트리라는 작곡가의 존재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어떤 곡에서 불현듯 <백 투 더 퓨처>의 메인 테마곡이 떠오르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찾아보니 같은 작곡가였다. Real World Consequences의 1분 13초에서 <백 투 더 퓨처>를 생각나게 하는 음이 등장한다. 너무 비슷한 음이어서 무의식 중에 듣다가 바로 <백 투 더 퓨처>가 생각났다. 작곡가는 이걸 의식한걸까 궁금하다.
3. 마이클 지아키노 (Michael Giacchino), 작곡가
- A Man Named Suicide (from 혹성탈출: 종의 전쟁)
- It's Raining Vengeance (from 더 배트맨)
이 작곡가도 새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미 걸출한 영화 음악들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더 배트맨>을 보던 중 나오는 음악에서 <혹성탈출: 종의 전쟁>의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시저가 인간들의 군부대에 잠입해 대령의 방에 들어가 대령과 조우하는 장면의 분위기가 생각났는데, 찾아보니 맞았다. 두 곡에서는 저음으로 깔리는 팀파니가 특히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폐쇄된 건물 안에서 울려 퍼지며 들리는 무거운 발소리같다. 음악의 영향인지 두 영화 모두 전반적으로 음산하고 우울하기도 한 분위기가 비슷하다.
4.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감독
최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원작 만화책을 보면서 이후 그가 만든 많은 작품들에서 본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만화책은 영화로 개봉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 비해 훨씬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과 서사가 포함되어있다. 만화책이 원작이라고 하면 영화는 원작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거나 각색한 버전이다. 영화는 만화책 1권 까지의 내용을 거의 포함하고 결말로 이어진다. 그래서 2권부터 7권까지는 영화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꽤 많은 부분에서 그의 이후 작품들에서 본 것들과 유사함을 느꼈다. 예를 들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파즈와 시타가 구름 사이의 길을 발견하는 장면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의 모습과 황야의 마녀가 부리는 고무 인간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경우가 그랬다. 내가 느낀게 맞다면 아마도 하야오 감독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작업 당시 머릿속에 있던 소재들을 이후 영화들을 작업할 때 재사용한 것 같다.
5.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
일본의 각본가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중 <마더>는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 되어 꽤 인기를 끈 작품이다. 그 외에 한국에서 꽤 알려진 것으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작품이 있고, 최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라는 작품도 그가 각본을 썼다. 나는 그의 작품 중 <우먼>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10년 전 처음으로 보고 최근 아내와 둘이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며 상당히 많이 울었다. <우먼>이 마음에 많은 여운을 남겼기에 그의 다른 작품도 한 번 보고 싶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더>를 추천하기에 왓챠를 통해 감상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 만큼 감동은 느끼지 못했는데, 이유는 내가 <우먼>을 먼저 봤기 때문이다. 주요 설정이 <우먼>과 너무도 유사해서 <마더>를 볼 때는 전혀 새로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한 배우가 <우먼>에서도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두 작품에 시간순으로 <마더>가 2010년에 먼저 방영되었고, <우먼>은 2013년 방영되었다. 이토록 유사한 설정을 왜 두 드라마 각본에서 사용했을까 생각해봤다. 추측이지만 사카모토 유지는 <마더>에서 사용한 이 설정의 아쉬운 부분을 <우먼>에서 만회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은 단순히 여러 창작물을 접하면서 느낀 흥미로움을 기록하고 싶어서 적었다. 위에 나열한 위대한 창작자들의 업적을 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으니 혹시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그들의 작품들 중 일부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 재미있게 생각했던 차에 내가 경험한 몇가지 사례들을 적어보았다. 창작자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전에 사용했던 어떤 것을 재사용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약 의도했다면 그것도 재미있다. 어쨋거나 나는 그런식으로 창작자들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난 게 아닐까 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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