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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거장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영화 감독을 거장으로 만드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솔직히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대단한 작품들을 꽤 많이 만들면 거장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본질일 것이다. 분명 하야오 감독의 10편 이상 되는 작품들은 거의 모두 명작이라 일컬어진다.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작화와 연출, 신비로움, 그리고 감동적인 음악. 이것들이 정말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40년 가까이 된 그의 초기 작품들을 봐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의 초기 작품들이야말로 걸작다움을 느낄 수 있다. 초기 작품들은 컴퓨터 기술 없이 오로지 종이와 붓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코 미야자키 하야오를 꼽을 정도였기에 최근 몇개월 동안 그와 관련된 서적들을 최대한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야오 감독 본인이 집필한 책 중 국내 번역된 것은 몇 권 없었고, 대신 그와 함께 일했던 스즈키 도시오라는 인물의 책이 꽤 많아서 거의 다 찾아 읽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알아도 스즈키 도시오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스즈키 도시오는 원래 잡지사 편집자로 일하던 사람으로, 1978년 새로 창간된 <아니메쥬>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맡게 되면서 이를 위한 취재를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게 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남은 평생을 하야오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그리고 스즈키 도시오 이렇게 세 사람의 만남을 계기로 사실상 지브리 스튜디오가 설립되게 된다. TMI 하나 덧붙이자면, 지브리는 스즈키 도시오가 몸담고 있던 도쿠마쇼텐이라는 회사를 모회사로 둔 형태로 설립되었다.
스즈키 도시오는 지브리와 관련된 여러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들은 지브리 내부 사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지브리와 관련된 그의 책들을 거의 다 읽어보았는데, 여러 책에 걸쳐 몇 가지 일화들이 중복 기록되어있는 부분이 조금은 아쉽긴 했지만 하야오 감독의 창작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상태로 세상에 나왔을 것이라고 그저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하야오 감독은 많은 창작의 소재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낼 대단한 능력을 가진 창작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는 스즈키 도시오가 아니었다면 하야오 감독의 성공이 이 정도엔 못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스즈키 도시오의 편집자로서의 감각이다. 그는 애니메이션 창작에 관해선 문외한이었지만 오히려 그것 덕분에 작품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걸음 떨어져서 작품의 전체 그림을 보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관객들이 수긍을 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 <모노노케 히메>의 경우, 초기 설정에서 모노노케 히메는 토토로처럼 생긴 괴물의 모습이지만, 스즈키 도시오의 제안으로 이시타카라는 남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등 많은 설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하야오 감독은 원래 <이시타카 전기>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 또한 스즈키 도시오의 의견으로 <모노노케 히메>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예는 상당히 많다. 스즈키 도시오의 의견으로 작품의 흐름이 바뀌거나 결말이 바뀐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너무 밋밋한 이야기 흐름에 위기나 갈등을 만들어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마지막의 시계탑 장면도 스즈키 도시오의 제안으로 삽입 되었다.
두 번째는 음악이다. 작품의 내용, 그러니까 연기와 연출 그리고 서사가 그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작품을 보는 시청자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앞에서 밝힌 본질적인 부분이 조금 약해도 음악에 힘이 있으면 관객은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음악은 본질을 압도하기도 하는 힘을 가졌다. 그 예로 <시네마 천국>이나 <러브 어페어>(1994)를 들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영화음악 거장이 작곡한 곡으로 유명한데, 작품의 내용은 정말 별게 없다. 그럼에도 두고 두고 사랑받는 음악을 남겼고, 그 덕분에 영화까지 이름을 날린 케이스다. 설명이 길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히사이시 조라는 천운을 만났다. 하야오 감독의 모든 작품 속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맡았는데, 마찬가지로 그의 음악은 작품에 감동을 주는 힘을 가졌다. 그런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작업 당시 신인이었던 히사이시 조를 발탁해 하야오 감독에게 연결해준 사람이 스즈키 도시오다. 히사이시 조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영화 음악을 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히사이시 조의 입장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을 듯 싶다. 덕분에 그의 음악 또한 널리 사랑받고 그도 유명세를 얻었으니 말이다. 당시에도 이미 좋은 음악가였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멋진 음악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홍보 방식이다. 스즈키 도시오는 지브리의 프로듀서로서 작품의 흥행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이다. 오히려 하야오 감독은 흥행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역대급 대히트를 친 것도 그의 솜씨다.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제대로 홍보되지 않으면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 홍보 포스터의 구성, 카피라이트 등 대부분 스즈키 도시오의 성과다. 그리고 또 중요한게 얼마나 많은 영화관에서 개봉하느냐도 중요하다. 지금같이 안방 극장이 일반화되지 않은 30여년 전에는 개봉 영화관 수가 상당히 중요했다. 실제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은 전대미문의 개봉관 수를 확보했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이 지금 처럼 명성을 떨치기 전의 그의 초기 작품들 부터 시작해 점점 더 큰 단위로 흥행시켜온 배경에는 분명 스즈키 도시오의 홍보 실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처럼 세 가지가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토록 사랑받는 영화들을 만든 감독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즈키 도시오를 만난 것 조차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운이고 실력인지 모른다. 얼마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원작이라 할 수 있는 7권 짜리 만화책을 구매해서 보았다. 사실 이것 또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만화책으로 먼저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스즈키 도시오의 제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투자자가 없으니 먼저 만화책으로 만들어 반응을 보고 그것을 토대로 투자자를 설득하자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는 만화책이 만들어지는 중에 애니메이션 작업이 시작되었고 영화가 개봉된 지 한참 후에 만화책이 완결되었다고 한다. 이 7권 짜리 만화책을 보며 꽤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하야오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그리지 않았을 폭력성과 약간의 선정성이 만화책 속에는 그려져있기 때문이었다. 잘린 머리가 뒹군다던지, 사람의 내장이 쏟아져 나온다던지, 작중 인물이 음담패설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나온다. 하야오 감독이 순수하고 위대한 작품들을 만든다고만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실망한다 한들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멋진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고, 나는 그 작품들을 보며 큰 즐거움과 감동을 경험했다.
그에 대한 기록들 중 정말 놀랐던 게 있다. <모노노케 히메> 작업 당시 나이가 56세였던 그는, 촉박한 마감 기한과 엄청난 작화 매수를 감당하기 위해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스튜디오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놀라 까무라쳤다. 올해 겨우 한국 나이 마흔이 된 나는 흉내도 못낼 작업량인데다가, 그렇게 이틀만 했다간 내 허리가 녹아 없어질 것이다. 당시 얼굴을 봐도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게 너무도 건강해 보인다. 따로 지켰던 건강 관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타고난 건강체질인걸까? 담배도 엄청 태우는 골초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타고난 거라면 그거 하난 정말 부럽다. 백발 할아버지가 되도록 책상에 몇시간이고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제 80을 훌쩍 넘긴 그의 최근 사진을 보니 확연히 노쇠해진 모습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이후 그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제는 정말 은퇴해도 충분할 나이에 작품 준비로 무리하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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